다섯 번의 진화를 거듭한 5시리즈가 4년 만에 페이스리프트돼 국내 데뷔했다.
크리스뱅글의 지휘 아래 너무나도 혁신적인 돌풍을 일으킨 5시리즈의 외형상 변화는 크지 않지만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는 디자인은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새롭게 선보인 5시리즈의 가장 큰 변화는 파워트레인 파츠의 진화에 있다.
BMW측은 이번 페이스리프트에 대해 ‘Midlife Refresh Program’이라 설명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2006년 봄 발표한 BMW의 직접분사 방식 시스템의 신형 엔진 탑재에 있다.
2003년 출시된 5세대 5시리즈의 데뷔가 4년이 지났건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타일링과 디자인은 여전히 신선하다.
그것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파워일지 모른다.
2001년, 지금의 7시리즈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많은 논란과 다양한 의견을 몰고 왔지만 결국 세월이 지난 지금엔 BMW가 보여준 혁신적인 스타일링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BMW는 2007년을 기점으로 ‘Efficient Dynamics’란 새로운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뉴 1시리즈에 쓰인 직렬 4기통 가솔린 및 디젤 엔진과 5시리즈에 사용된 신형 직렬 6기통 엔진 사양의 출시와 함께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다.
BMW가 추구하는 Efficient Dynamics는 파워 트레인 기술의 혁신을 비롯해 에너지 흐름의 효율적인 관리, 엔진 및 차체의 경량화 설계, 그리고 에어로 다이내믹함의 극대화로 요약된다.
쉽게 말해 성능은 향상시키고 차체 중량은 줄여 연료 소비를 줄인다는 것.
물론 연료 소비의 감소는 유해 배출가스 저감과 직결되기 때문에 21세기 최대의 과제인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도 기여한다.
그러면서도 BMW의 브랜드 이미지인 다이내믹함을 살려내고 있다.
오랫동안 만들어온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21세기에 대응하는 엔진을 개발했고 그 엔진을 탑재하고 등장한 것이 이번 5시리즈 페이스리프트의 핵심이다.
0→100km/h, 5.6초의 마력
고스란히 앞뒤 도어를 간직한 채 안락하고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는 세단에서 과연 이토록 차고 넘치는 파워가 필요할까?
럭셔리 세단이 추구하는 고성능과 고출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550i는 BMW의 초고성능 버전인 M모델 수준은 아니다.
기존 545i의 대체 모델인데다 올해 초 M5, 650i컨버터블과 함께 국내 론칭하며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끈 모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양의 탈을 쓴 매우 열정적인 늑대라는 사실.
4.8리터 V8 엔진은 6300rpm에서 367마력의 최고출력을, 3400rpm에서 49.9kg·m의 최대토크를 선보인다.
이전의 545i 모델보다 배기량은 0.4리터, 출력은 34마력, 토크는 4.0kg·m 정도 늘었다.
정지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5.9초에서 5.6초로 줄었다.
마력당 무게비가 5kg이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출발 후 크게 숨 한번 고르고 나면 속도는 이내 100km/h를 넘어선다.
제로백 5.6초의 가속 성능을 논하자면 잘 달리기로 정평 나 있는 스포츠카들인 메르세데스 벤츠 CLK55 AMG의 5.2초, 포르쉐 박스터S의 5.5초, 스바루 임프레자 WRX STi의 5.5초와 동등한 수준이고, 렉서스의 럭셔리 세단인 뉴 GS350의 6.1초, 메르세데스 벤츠 E550의 6초보다 빠르다.
100km/h를 지나 150km/h를 넘어 200km/h의 벽을 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가속 페달에 얹은 발에 조금만 힘을 더하면 으르렁거리며 엔진은 회전 수를 높이고 속도계 바늘은 거침없이 치솟는다.
즉각적인 반응과 흠잡을 데 없는 가속감은 궁극의 스포츠 드라이빙 머신을 자처하는 BMW의 아성을 인정하게끔 한다.
BMW가 선보이는 라인업의 모든 세단은 스포츠 세단이라 해도 무방하듯 550i의 핸들링 역시 날카로우면서 예리하다.
도로 위에 레일이라도 깔아놓은 듯 스티어링 휠의 조작에 따라 기민하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서스펜션은 국산 모델과 비교하면 꽤나 단단한데도 노면 충격을 잘 걸러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중형 세단이지만 굽이진 길을 과격히 돌아나가도 탑승자의 자세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퍼포먼스와 승차감의 이상적인 조화에서 얻어낸 결과물이라 인정하자.
거의 느끼지 못하는 오토 트랜스미션의 변속 충격과 즉각적인 응답을 보이는 6단 스텝트로닉, 속도에 따라 스티어링 휠의 조타각과 행동 반경을 적절히 조절하는 액티브 스티어링도 운전을 더욱 쾌적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누가 뭐래도 550i는 고성능 스포츠 세단임이 분명하다.
어지간한 와인딩로드는 깔아둔 레일을 따라 돌듯 안정적이고 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급코너링 시 차의 앞부분이 코너 안쪽으로 빨려드는 오버스티어 현상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코너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언더스티어 현상이 발생한다.
최근 대부분 수입차들에서 나타나는 의외의 반응이다.
뉴트럴 스티어에 가까운 주행 감각이 트렌드인 듯싶다. 550i 역시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의도적인 세팅이 아닌가 싶다.
7시리즈 부럽지 않은 편의장치
550i의 편의장치는 BMW의 최상급 모델인 7시리즈가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별도의 온도 조절이 가능한 좌우 독립 시트부터 뒷좌석 에어컨, 단계별 온도 조절이 가능한 쿨링과 히팅 시트, 안개등 각도 조절, 헤드라이트 세척 장치, 스티어링 휠 히팅, 주차 거리 제어장치, 진일보한 통합 안전 제어 시스템인 DSC(Dynamic Stability Control) 등 많아도 너무 많다.
만재한 편의장치들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차선이탈경고 시스템, 그리고 전동 시트.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운전자 전방 유리창에 현재 속도와 크루즈 컨트롤 속도, 연료 경고 메시지 등 주행 중 꼭 필요한 주행 정보를 표시해준다.
운전 중 전방을 향하던 시선을 거둘 필요가 없다.
그만큼 다이내믹하고 즐거운 운전이 가능한 것.
차선이탈경고 시스템 역시 신선한 안전 시스템 중 하나.
졸음운전이나 전방 주시 태만 등으로 차선을 이탈할 경우 70km/h 이상의 속도에서 여지없이 스티어링 휠에 진동을 일으켜 운전자의 해이해진 운전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잡게 한다.
70km/h 이상의 속도에서 의도한 차선 바꾸기에서도 여지없이 전해지는 스티어링 휠의 진동이 불필요하다면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버튼 조작으로 작동을 멈출 수 있다.
550i의 진동 시트는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섬세하고 특별하다.
앞뒤 이동을 기본으로 높낮이 조절, 헤드레스트 각도, 등받이 각도뿐 아니라 상체의 기울기 정도부터 허벅지 부분의 시트 길이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진동 시트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다.
누구나 제어할 수 있는 보통의 애마가 아닌, 거친 야생마의 울부짖음을 몸으로 느끼며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쾌감은 그 얼마나 황홀하고 대견스러울까.
BMW가 지향하는 다이내믹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550i는 바로 그런 모델이다.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하지 않은 양의 탈을 쓴 야생 늑대의 주인은 바로 당신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