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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다_인터뷰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과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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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범은 테크와 자동차에 조예가 깊은 공간 디자이너.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를 넘긴 그는 차와 디자인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이거였다.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 사는데 고민 많이 했다. 결국 라이카를 샀다. 요즘 디카들은 어느 브랜드건 셔터를 누르는 감각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제일 좋았던 카메라는 모터 드라이브를 단 라이카 M6였다. 그 놈의 모터드라이브가 얼마나 죽이냐 하면 셔터를 ‘철커덕’ 하고 누르면 ‘팍’ 하고 튀어나온다.

그 느낌은 대학교 군사훈련 시절 처음 쏴봤던 M1 소총의 격발 후 반동을 떠올린다. 한편으론 포르쉐 매뉴얼 차를 운전할 때 3단에서 4단으로 집어넣고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클러치를 뗄 때 ‘팍’ 하고 튀어 오르는 반동과도 유사하다. 그건 몸이 인지한 몇 가지의 동일한 기억이다. 이 세 기억이 먼 시간적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모두 기계였다.

차 이야기를 묻자 디자이너 마영범은 카메라 이야기를 했다.
이 시대에 디자인은 빅 이슈가 되고 빅 비즈니스가 되고 트렌드의 중심이 된다. 그림을 그리다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창조적이거나 문화적인 부분에 특히 관심이 많다. 타 영역과의 교류나 융합이 잦아지고 디자인 영역간의 경계선이 무너져서 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디자인의 총아인 자동차 디자인에 물론 관심이 많다. 최근 자동차 디자인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네온 간판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디자인 영역에서 차는 대량 생산되는 디자인 결과물이다. 최근 자동차 번호판을 바꾼 것도 큰 영향력의 발현이다. 사회환경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도구들이 바뀌면 사회 전체의 맥락이 바뀐다.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타이포그래피, 즉 글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화폐의 글자체를 바꾸거나 여권, 신분증, 자동차 번호판 등을 바꾸는 일이다.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금 무슨 차를 타나?
9년째 타고 있는 아우디 TT 콰트로와 포르쉐 911 카레라4S(996)를 탄다. 얼마 전까지 G바겐 숏바디를 탔다. 

G바겐을 포기한 특별한 이유라도
고장은 없었는데 연식이 오래돼 불안했다. 지금은 호시탐탐 상태 좋은 G바겐을 물색 중이다. 사실 지금껏 타 본 차 중 G바겐 숏바디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우디 TT를 9년이나 탔다고?
아우디 TT가 처음 등장했을 때 모든 디자이너들이 경악했다. 당시 유기체 같은 디자인이 유행했지만 자동차 디자인에서 TT의 등장은 일대 반란이었다. 디자인하는 사람 누구도 TT의 디자인에 대해 흠을 잡지 못했다. 아우디는 TT 하나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신형 TT의 등장 이후 TT는 사라졌지만 9년째 타고 있는 수동변속기 TT는 여전히 만족스럽고 익숙하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차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대개 남자들은 여자를 사귈 때 사귄다는 표현 대신 꼬신다고 말한다. 마초적인 남성이 이성을 어떤 공략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거다. 하지만 연애와 사랑은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교감의 행위다. 차도 연애와 동일하다. 돈을 치르고 차를 사는 게 아니라 이 차와 내가 교감할 수 있는지, 어울리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주변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새파란 젊은이가 S500에서 내리는 풍경은 아무래도 생경하다. 대상에 대한 애절함과 절실함으로 페라리를 모는 샐러리맨이 있다면 그건 인정할 만한 것이지만.
 

차를 바라보는 당신만의 기준은
전체적인 비율(Proportion)을 우선으로 본다. 비율 좋은 차들이야 너무 많다. 굳이 브랜드를 하나 꼽으라면 애스톤 마틴이 좋더라.

의자와 가구에 대단히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차 시트는 어떤가?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다. 앉기에 편한 의자, 보기에 좋은 의자 등. 의자는 단순한 오브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의자 디자인에 열중하는 것은 대량생산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보여 줄 수 있고 신체와 밀접하게 닿는다는 특별함도 있기 때문이다.

의자를 만든다는 것은 인체공학과도 관련이 깊다. 훌륭한 디자인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쿠션의 강약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신체 비례나 각도에 대한 고려가 더 중요하다. 의자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요즘 시트는 그런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다양한 각도 조절이 가능하지 않나.

독일은 단단하고 세밀한 각도 조절이, 일본은 편안하고 안락한 시트를 추구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취향을 선호하나?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시트는 박스터였던 것 같다. 너무 단단하고 움직임이 불편했다. 그에 반해TT는 너무 푹신하고 부드러워 편안함이 좀 과한 것 같다. 가장 우스웠던 시트는 시트의 방석 부분에 스프링이 느껴졌던 벤츠 시트였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그 시트가 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앞자리가 운전석과 보조석으로 분리된 시트보다 일자로 붙어 있는 벤치시트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지금에서는 레트로적이고 인간적인 디자인이다. 앞좌석에 앉아 운전하면서 편안히 손을 잡거나 누울 수 있는 하나의 시트가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나.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은 구조지만 하나로 합쳐진 시트 위에 함께 앉아 간다는 건 인류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디자인이다.

오디오 마니아라고 들었다. 지금 타는 차의 오디오는 만족스러운가?
카 오디오의 관건은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차는 오디오와 안 맞는다. 카 오디오 마니아들은 두 부류다. 아주 많이 투자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 나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더러운 경험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발견한 찢어진 소프트 톱과 빼가지도 못하고 센터페시아만 망쳐놓고 가버린 그 만행 현장을 목격했을 때는 정말로 절망적이었다. 이후로 카 오디오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유저 입장에서 물건을 고르다 보면 최고의 물건을 고르게 된다. 나는 물론 디자이너기 때문에 물건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에 신중을 기한다. 더불어 맨 밑바닥의 것 또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시자의 입장이기에 누구보다 앞서가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 무언가에 빠지면 아주 깊이 빠져봐야 한다. 최고치에 도달해본 사람, 최고의 것을 얻어본 사람만이 허망함을 안다. 그 허망함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최적의 것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게 된다. 최고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최적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일상에서 최적의 물건을 경험하다 보면 삶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된다. 일상의, 그리고 삶의 가치도 알게 된다. 최고의 것들을 경험하다 보면 최고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된다. 결국 우리는 최적의 것을 찾기 위해 최고의 것을 훈련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찮은 오브제를 사용하다가도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나에게 최적의 것은 이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최적의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순정 카 오디오는 나름 최적의 밸런스로 완성돼 나온다. 하지만 튜닝이라는 미명하에 밸런스를 깨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적을 져버리는 것이다. 최적의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어떤 차건 옆에서 보면 앞뒤 유리가 경사져 있다. 여기서 난반사가 발생한다. 하지만 G바겐은 박스형태다. 훌륭한 큐빅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사운드 청취 공간이 될 수 있다.

사운드 청취공간으로서의 실내 말고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윈도를 통해 밖을 본다. 하지만 경사진 차 유리를 통해 왜곡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입장에서 보면 윈도가 서 있는 G바겐은 왜곡이 적다. 보는 게 중요한 일인 디자이너에게 높은 차체 위에서 직각으로 선 윈도 바깥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만족스러운 행위다. 듣는다는 것과 본다는 행위, 이 두 가지 만족스러움만으로도 G바겐은 가치 있는 차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럼 굉장히 이질적이었던 차는?
그게 바로 아우디 TT다. TT를 처음 탔을 때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 옆 유리창이 너무 좁고 시야가 답답했다. ‘디자이너가 창문을 왜 이따위로 만들었을까’ 하고 고민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전의 건축에서 창문은 무조건 크고 시원해야 좋았다. 마음껏 햇볕과 바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최고였다.

하지만 창은 밖을 내다보는, 조망으로써의 기능도 중요하다. 좋은 건축가는 집을 짓기 전부터 창의 각도와 위치를 잡고 설계에 들어간다. 좋은 구도와 위치, 그리고 안정적인 비율의 프레임으로 창을 만든다. 16:9라는 와이드 포맷의 시도도 창에 대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차의 윈도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밖이 넓고 시원하게 잘 보인다는 개념에서 차의 성격에 맞춘 최적의 비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한 TT는 달리기 좋은 컨셉트에 맞춰 윈도를 설계했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프레임을 고려한 것이다.

디자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모델은?
비례가 깨진 차는 질색이다. 앞, 뒤가 어울리는 않는 차 말이다. 대부분의 메이커는 소형부터 대형까지 같은 컨셉트로 이어진다. 일본 차 산업이 유럽의 디자인을 따라잡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나? 유럽메이커는 일찌감치 수석디자이너와 CEO가 디자인을 결정했다. 전 모델에 동일한 아이덴티티를 적용할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일본 메이커는 20명 정도의 디자이너가 모여 협의 하에 디자인을 결정했다. 협의하는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쉽지 않다. 의견을 절충해야 하니까. 협의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 디자인은 디자이너 한 사람의 역량이 굉장히 크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하나의 컨셉트가 적용되는 게 중요하다. 20명의 20가지 디자인을 모아 하나의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방향성이 모호해진다. 어느 영역에서건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에게 차는 어떤 이미지인가?
생애 첫 번째 여자 같다. 이동수단이기도 하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오감의 행위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대상이다. 이미 이동수단으로써 차를 보던 시대는 지났다. 미니쿠퍼 같은 차는 실내가 너무 팝 적이고 장난스러워 처음에는 예쁘지만 금방 싫증나기 쉽다. 포르쉐 디자인은 고지식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996에서 997로 넘어오면서 실내에 실버가 더해지고 쓸 데 없는 내장재들이 보이기 시작해 좀 실망스럽다. 오랜 경험으로 사람이 인지했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디자인 또한 무리가 따른다. 로디우스가 대시보드 중앙에 계기판을 달아놨는데 여전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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