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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_뉴스&정보

대리운전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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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은 하나의 문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법적 제도적 마련은 미비한 상태다. 대리운전업체와 기사는 난립해 제살 깎아먹기 출혈 경쟁을 이어가고 택시 또한 대리운전업을 적대시 한다.

대리운전업계 종사자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함에도, 대리운전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은 그저 그네들만의 리그로 치부해버린다.

대리운전 기사의 경험을 통해 무언가 배우고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에 기획 진행했던 이번 기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됐다.
물론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정보와 진실도 찾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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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은 아무나 하는 걸까? 조건의 문턱은 매우 낮지만 롱런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며 문제도 많다

한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지난 10월 11일 저녁 9시, 강남에서 강서로 향하는 올림픽도로. 12만㎞를 달린 구형 SM5는 검정색 신형 SM7을 버겁게 좇고 있다. 뒤를 쫒는 차에는 내가 타고 앞선 차에는 대리운전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달린다.

비록 하루지만 ‘꽁지’를 하느라 어설픈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꽁지란 2인 1조의 영업방식을 말하는 대리운전 업계의 은어. 한 명이 대리운전을 해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면 한 명은 차를 몰고 따라가 대리운전을 마친 기사를 태우고 다음 손님을 만나기 위해 함께 이동하는 영업방식을 말한다. 차가 있기 때문에 다음 손님이 있는 곳까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익을 반으로 나눠 챙겨야 하고 기름값도 만만치 않아 요즘에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게다가 서울 전역 1만원, 1만2000원짜리 저가 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대리운전기사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두 발로 걷고 뛰며 영업을 한다. 고단하고 힘든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2인 1조 영업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대리운전기사 체험을 처음 의뢰했을 때 대리운전업체 ‘상록수’ 조동근 대표는 “달랑 하루 하고 신파조로 다 아는 척 쓸려면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최소 3일은 해보고 제대로 된 기사를 쓴다면 협조해 주겠노라 했다. 3일은 물론 일주일도 할 각오는 됐지만 그러기 힘든 상황을 이해시키고 하루짜리 대리기사 체험을 시작했다.

대리운전기사 체험은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롭다. 대리운전 보험도 들어야 하고 콜을 제공받을 수 있는 단말기도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도 가능하다지만 콜을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가입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꽁지’ 기사로 밤거리를 나선 거다.

상록수는 합정동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한 대리운전업체다. 전화기와 컴퓨터 몇 대, 간이 소파 그리고 TRS(주파수 공용통신)가 놓인 사무실이 상록수의 종합상황실. 전성기 때는 2000명까지 고객을 두고 호황을 누렸고 지금도 고정 고객만 500여명을 유지하는 탄탄한 업체다.

조 대표는 대리운전에 대해 너무 쉽고 만만하게 바라보는 시각에 불만이 많다. 그래서 대리기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더욱 꼼꼼하게 면접한다. 그는 대리기사의 삶을 노숙자 바로 위의 삶이라고 말한다.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리운전기사 안합니다. 체력은 안 되고 급전은 필요한, 정말 삶의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찾는 곳이에요. 생각을 해봅시다.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저녁시간도 버린 채 밤잠 설쳐가며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바로 대리운전기사의 삶입니다.”

조 대표가 내게 콜 캐치 프로그램이 깔린 PDA를 하나 건넸다. 이미 베테랑 대리운전기사이기도 한 조 대표의 ‘꽁지’ 기사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엄연한 일일 대리운전기사로 임명된 것이다. 업무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함께 움직이며 조 사장이 고객을 태우고 이동할 때 잘 따라만 다니면 된다. 여건이 된다면 역할을 바꿔 직접 고객을 모시면 된다. 전업 대리운전기사는 좀 다르다. 그들은 PDA와 휴대전화에 콜 캐치 프로그램을 적게는 두 개, 많게는 서너개까지 돌려가며 수시로 고객의 콜을 확인하고 캐치한다. 자신의 위치와 가깝고 금액이 적당한 콜을 선택해 안전하고 성실히 고객을 모시면 된다. 

출정 전 간단한 교육이 시작됐다. “고객은 99% 술에 취한 사람입니다. 반말이나 욕지거리는 예사입니다.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안 나가는 게 더 좋습니다.”

이제 시작이다. 합정동 너머 홍대의 흥청거림이 다른 나라 풍경같다. 조 대표는 관록 있는 업체의 수장이기 이전에 몇 년간 대리운전기사를 경험한 노장이다. 그는 지금도 가끔 필드에 나서 대리운전기사를 한다. 시장 흐름도 알아보고 고정고객의 목소리도 들어보려는 의도다.

“요즘은 대리운전업체나 기사들도 정말 먹고살기 힘듭니다. 규모 큰 업체가 치고 들어와 상식 이하의 가격으로 콜을 마구 뿌려대며 영업을 합니다. 게다가 요즘 대리운전하려고 나서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습니다. 2~3년 전만 해도 성실하기만 하면 수익이 괜찮았어요. 지금은 열심히 해도 하루 10만원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녁 7시쯤 나와 새벽 5시까지 매달려 일하는 전업 대리운전기사들인데도 말이지요. 새벽 1시 이후로는 콜이 거의 안 뜹니다. 참담한 상황이죠.”
그러면서도 조 사장은 PDA에 눈을 Ep지 않는다. 좋은 콜을 잡기 위해서다. 인터넷과 IT의 발달로 최근 대리운전기사들은 콜 캐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사용료를 내고 이용한다. 설정에 따라 단말기에 뜨는 콜이 달라지는데, 보통 자신의 위치에서 반경 5km에서 10km 정도를 커버하도록 세팅한다. 너무 멀면 10분 이내에 고객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경우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 콜을 잡았다. 홍대입구에서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까지 1만5000원짜리 콜이다. 출발하자는 손짓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조 사장은 이내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상록수 대리운전사입니다. 고객님의 위치가 어디십니까?”
위치 파악 후 조 사장은 5분 내로 도착하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고객들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더더욱 오래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요. 여러 개의 대리운전을 불러놓고 제일 빨리 오는 기사에게 열쇠를 맡기고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요. 게다가 ‘길빵’ 기사에게 콜을 뻬앗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 대리운전기사는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게 생명입니다. 물론 손님을 안심시키고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죠.” ‘길빵’ 기사라 함은 업체에 몸담지 않고 개인적으로 영업하며 상황에 따라 콜을 잡고 다니는 정체가 불분명한 대리운전기사를 말한다.

홍대 앞 포차 삼거리에서 첫 손님을 만났다. 홍대 교수인 그는 저녁 회식 자리에서 술을 한잔한 상태지만 정신도 멀쩡하고 매너도 좋다. 게다가 일산이 집인 친구를 내려주고 자신의 목적지인 강남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먼 거리를 갔다 시내로 돌아오는 코스는 대리운전기사들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콜이다. 시작이 좋다. 고객이 업체에 콜을 접수할 당시는 일산을 거칠 계획이 없었기에 1만5000원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진 이런 경우에는 추가로 2만원에서 2만5000원을 더 요구할 수 있다.

콜 캐치 프로그램에 뜨는 정보에는 고객의 위치와 최종 목적지만 나타날 뿐 행선지는 표시되지 않는다. 출발부터 순조롭다. 3만5000원의 운행요금에 팁 5000원을 더해 4만원을 벌었다. 대리운전은 운이 따라줘야 하는 일이지만 이것도 기술 없는 초보 대리운전기사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경기가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주말인데도 강남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주변을 서성이며 단말기를 이리저리 살피고 매만지는 사람들만 여럿 보인다. 조 대표 말로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대리운전기사라고 한다. 경기가 어려워 술자리도 줄어든 데다 저가 콜까지 난무하는 요즘은 좋은 콜은 고사하고 콜을 잡아 일하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다. 그러면서도 조 대표는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런 집요함이 없으면 대리운전으로 돈 벌기는 어렵다. 게다가 단말기에 뜨는 출발지와 목적지 정보만으로 그곳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일은 곱절로 힘들어진다.

단말기를 살피던 조 사장이 재빨리 PDA 화면을 클릭하더니 통화를 시도한다. 논현역 사거리에서 화곡동까지 가는 1만2000원짜리 콜이다. 꽁지를 대동한 2인 1조 영업은 이래서 좋다. 혼자라면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논현역 사거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 1만2000원짜리 콜을 잡으려고 택시를 타는 건 도저히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1만2000원에 팁 3000원까지 더해 1만5000원을 벌었다. 출발 두 시간 만에 5만5000원의 수익을 올렸으니 꽤 성공적인 출발이다.   

대리운전이 가장 바쁘게 일하는 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 시간은 말 그대로 전쟁터가 따로 없다. 전체 고객의 80%가 몰리는 때다. 세시간 동안 빗발치는 콜은 그 많은 대리운전기사들도 커버하기 힘든 양이다. 하지만 좋은 콜을 빨리 확인하고 빛의 속도로 집어내지 못하면 어느새 남의 손에 넘어가게 마련.
화곡동에서 합정동 근처로 슬슬 이동 중이던 조 대표는 마포역 근처 손님의 콜을 잡았다. 목적지는 일산 마두역 부근. 1만5000원을 번 우리는 다시 합정동 부근으로 차를 몰았다. 넘어오는 차 안에서 조 대표는 대리운전기사의 삶에 대해 말한다.

“보기보다 쉬운 것 같죠? 이게 다 노하우가 없으면 힘든 겁니다. 술 취한 고객들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해요. 게다가 술집 앞에 차를 대고 있기 때문에 골목 안 구석진 곳에서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눈에 띄는 건물 이름과 골목길의 일방통행 노선, 동네 이름만으로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게 수입과 직결되는 겁니다.”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내비게이션의 노예가 돼 지리에는 생각을 놓아버린 나로선 엄두가 안 난다.

이제 ‘꽁지’ 기사에서 대리운전기사로 역할을 바꿨다. 다음 손님부터는 직접 해보기로 했다. 30분 가까이 단말기를 살피며 콜을 잡으려 시도했지만 출발지와 목적지 이름만으로는 이게 어떤 콜인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러다 보면 예의주시하던 콜은 다른 대리운전기사가 낚아채 떠나버리기 일쑤다. 조 사장은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한참을 구경만 했다.

“초보는 다 그렇습니다. 100이면 100 다 그렇게 시작하죠. 단말기를 다뤄본 경험도 없고 동네 이름만으로 거기가 어딘지 감을 못 잡죠. 콜이 좋고 나쁘고도 판단할 겨를 없이 허둥대다 보면 좀 해볼까 하는 콜은 이미 다른 대리운전기사들이 가지고 가죠. 결국 초보 대리기사들은 우리 같은 베테랑 기사들이 절대 잡지 않는 저가 콜을 잡아타기 마련입니다. 서울시내 1만 원짜리 콜 말이죠. 서울 시내가 좁은 것 같죠? 서울 시내 끝에서 끝이 40km가 넘습니다. 그래도 일은 해야겠으니 남들 손 안대는 그 콜을 잡고는 고생고생하며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초보자들은 손에 5만원을 쥐기도 어렵죠.” 

보다 못한 조 대표가 단말기를 옮겨 잡고 바로 콜을 낚는다. 고수의 시선과 손길은 이렇듯 다른가 보다. 50대 중반쯤 보이는 중년 남성이다. 보기에도 고주망태가 된 그는 차 키를 건네주고 뒷자리에 앉는다. “목동 아파트 12단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을 감아버린다. 그나마 길을 좀 아는 곳이라 다행이다. 당산역에서 목동아파트까지 1만2000원이면 가격도 괜찮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 고객을 불러 깨웠다. 그런데 그는 죽은 듯 반응이 없다. 반응 없는 고객을 깨우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려 그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조 대표가 당황하며 내 행동을 막아선다. 그리고는 문을 연 채로 가만히 서서 그저 말로만 손님을 크게 불러 깨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5분쯤 흘렀을까. 다행히 잠에서 깬 남자가 정신을 차리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워하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가 “내 지갑”이었다. 그러면서 주머니를 확인한다.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다 있나. 아저씨 때문에 버린 시간이 얼마고 안 일어나는 아저씨를 깨우려고 들인 노력이 얼만데 일어나자마자 우리를 의심하며 지갑을 찾나.’ 조 대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이제 정신을 차리셨냐며 댁 근처에 도착한 것 같은데 어디에 주차를 하면 되겠냐고 정중히 묻는다. 차 한 대 세울 곳 없이 주차장이 협소해 결국 근처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1만2000원을 받았다. 이렇게 번 돈은 쓰고 싶어도 못 쓰겠다.

“당황했죠? 자다 깬 고객들 거의 대부분 첫 마디가 ‘내 지갑’입니다. 근데 절대 술 취해 잠든 고객 흔들어 깨우면 안됩니다. 함부로 몸에 손댔다가 크게 당합니다. 이럴 때 여성 고객일 경우 100% 성 추행범으로 몰려 파출소에서 골머리를 썩어야 해요. 술에 취해 잠들어 못 일어나는 고객이 정 못 일어나면 근처 파출소로 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좀 번거롭더라도 억울한 누명쓰고 못 들을 욕 듣는 것보다 백 배 낮죠. 희한하게도 경찰들이 흔들어 깨우면 다들 잘 일어납니다.”

목동아파트에서 콜이 많은 여의도로 차를 몰다 조 대표가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근처 콜을 낚았다. 신세계백화점 뒤 사창가 골목에 있다는 고객. 5분 안에 도착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영등포로 방향을 틀었다. 두 번의 음주단속과 공사 구간 정체. 생각보다 차가 많다. 정확히 5분이 지나자 전화벨이 울렸다. “언제 올거냐”며 다짜고짜 화를 낸다. 젠장, 딱 5분 지났다고 전화 걸어 화부터 내는 손님이 미워 죽겠다. 10분이 안 돼 도착한 사창가 뒷골목에는 고객이 없다.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리다 죽을 것 같아 다른 대리운전기사 불러 이미 출발했다며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어이없는 경우가 어떤 때는 하루에 서너 번씩 있기도 하다고 조 대표가 귀띔한다.  

환락의 불빛이 내뿜는 타락한 도시의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대리운전기사에게 흥청거리는 밤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환락의 아웃사이더로, 취객의 비유를 맞춰가며 노동의 대가보다 평가절하된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 대부분의 대리운전기사들은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을 견딘다.

한 콜만 더 잡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의도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가는 고객이다. 술자리가 언제 끝날지 몰라 기사를 집에 보냈다고, 수입차 몰아봤냐고, 이런 차 운전할 줄 아냐며 뻐기던 그의 차는 벤츠 S500. 취기가 적당히 올라 기분 좋아 보이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취재 중임을 밝혔다. 무슨 소린가 의아해하던 그는 “대리운전을 가끔 이용하지만 기사들이 돈을 잘 버는지는 모르겠다. 고객 차를 운전하는 건 그렇다 치고 다시 일거리가 있는 시내까지 어떻게 나가나. 택시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을 텐데. 택시비보다 더 싼 대리운전비용으로 어떻게 생활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타워팰리스 주차장 입구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관리직원이 대신 운전해 차를 주차해준다고 했다. 그 비싼 벤츠 S500에서 내린 돈 많은 아저씨는 대리운전비용이 터무니없이 싸서 걱정이란 말만 하고는 천원짜리까지 일일이 세서 달랑 1만5000원을 주고 사라졌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에 가까웠고 취재를 위해 함께 해 준 조 대표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하다. 대리운전 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쌩초보를 대리고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가 넘도록 대리운전기사를 하면서 번 돈은 9만7000원. 반으로 나누고 나니 약 4만8000원이다. 기름값 생각하고 콜 캐치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이용하면 내야 하는 수수료 20%, 보험료 등을 제하고 나니 대충 2만원 내외가 오늘의 수익이겠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대리운전기사는 더더욱 그렇다. “나도 대리운전이나 한 번 해봐?”하고 농담처럼 하던 말, 쉽게 던질 말이 아니다. 

대리운전 체험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할 이야기도 없을 거니와 나올 이야기도 뻔  할 거라고. 하지만 대리운전업계를 취재하고 경험하며 생각보다 많은 걸 알았다. 대리운전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규 하나 없다. 두 곳의 대리운전협회가 활동 중이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들의 힘도 미미하다.

대리운전기사와 고객 사이에 벌어지는 시시비비의 대부분은 대리운전비용에서 시작된다. 상식선에서 서로 납득할 만한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제 되는 저가 콜을 대리운전기사들이나 업체들 사이에서 막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리운전업계에는 고객과 대리운전기사만 있는 게 아니다. 대리운전업체가 있고 고객이 있으며 대리운전기사가 있다. 콜 캐치 프로그램을 개발한 IT업체가 있고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통신사가 있다. 거기다 보험사가 있고 대리운전업계를 견제하는 택시가 있다. 이들은 모두 경쟁상대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모인 단체다. 대리운전업체는 기사가 콜을 잡아 올린 수익의 20%를 무조건 수수료로 챙긴다. 1만원을 벌면 2000원을 대리운전업체가 수수료로 챙긴다. 결국 업체는 고객으로부터 많은 콜을 접수받아 건수를 올리는 게 시급하다. 그러다 보니 택시비보다 싼 저가 콜을 무더기로 만들어 토해낸다. 그 저가 콜들이 가격을 흐리고 고객들은 그 가격에 다녔는데 왜 너는 비싸게 받느냐며 단돈 3000원, 5000원에 멱살을 잡는다.

8만명을 추산하는 대리운전기사의 수를 생각하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엉켜있는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체계적인 시장으로 성숙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딴 세상 이야기인 듯 무관심한 정부와 자신의 이익 추구에 급급한 대리운전업계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공룡처럼 커버리기만 한 대한민국 대리운전이 없어지기는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대리운전기사의 황당 시추에이션

유쾌한 인생

광화문에서 고척동으로 향하는 콜을 잡았다. 고객의 통화 내용을 들으니 어느 대학의 교수다. 지인이 한 잔 더할 것을 권했지만 논문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처지였다. 그러던 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가요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막춤에 노래를 불러대며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가 대리운전기사인 내게 ‘술 한 잔’을 권유했고 본분을 망각한 난 다음날 새벽까지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손님으로 만나 이제는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특별한 인연을 이렇게 만들기도 한다.


한남동 이종면허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손님을 모시게 됐다. 그의 차는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은 구닥다리 스텔라였다. 행여 가다 멈추기라도 할까 걱정스런 마음에 조심스레 차를 모는데 나이 지긋한 손님이 자기가 그 유명한 한남동 이종면허란다. 알고 보니 면허가 귀하던 시절 한남동에 살면서 자가용을 몰 수 있는 이종면허를 소유할 정도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이라는 말씀. 가다 설 것 같은 구닥다리 고물차로 대리운전을 불러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젊은 시절 떵떵거리며 잘나가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손님을 보며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다.  


욕 한마디에 1000원

세상이 힘든지 타자마자 무자비하게 욕을 해대는 취객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손님들은 나이까지 밝히며 당신보다 나이도 많고 살 만큼 살았으니 욕은 그만하라고 타일러도 막무가내다. 결국 협상 끝에 욕 한 번 할 때마다 1000원씩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고객이 돈을 주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막상 집 앞에 도착하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대리운전비용만 고이 주면 다행이다. 팁? 그건 다른 사람 이야기다. 


형사의 “무서워”

강력계 형사를 태웠다. 타자마자 불특정 다수를 향해 생전 처음 듣는 욕을 정말 심하게 해댔다. 역겨울 만큼 심한 욕을 듣다못해 차를 세웠다. “다른 기사님을 부르십쇼”하고 내리려는 순간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이러는 거다. “동생, 나 무섭다” 이건 무슨 사연일까 당황스러웠다. 큰소리치며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욕하던 강력계 형사가 처음 보는 남정네 손을 부여잡고 무섭다니. 세상이 그렇게나 두렵고 무서웠던 것일까. 강력계 형사가 느끼는 무서움의 대상은 다름아닌 ‘아내’였다. 그는 아내가 무섭다면서 눈빛까지 흔들렸다. 대리운전을 하다보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배우자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다. 혹시 당신도 배우자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이보다 더 현명할 수 없는 대리운전 이용법 

1 대리운전기사의 신분을 확인하라. 요청한 업체에 정식으로 소속된 기사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대리 부르셨어요?”하고 대충 올라타는 ‘길빵’ 기사에게 걸리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다. 길빵 기사면 어떠냐고? 그 사람이 누군지 신분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고라도 나면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돌아간다. 추후에 날아드는 과속 딱지도 고스란히 당신이 부담해야 한다.

2 대리운전기사와 문제가 발생하면 대리운전을 요청했던 업체로 전화해 이야기하라. 상황실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 고객의 입장에서 처리하고 객관적으로 해결한다.

3 사고 발생 시 상황실로 연락하라.

4 신호 위반이나 규정 위반으로 인한 범칙금 관련 내용도 상황실로 연락해 문의하라.

5 기사와 직접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6 운전 중인 기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 반말을 하지 마라. 대리기사는 기사일 뿐 당신의 하인이 아니다.

7 술에 취해 잠들 것 같으면 출발 전 목적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라.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집을 목적지로 설정해 안내해줘라. 혹은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도 좋다.

8 상식 이하의 값싼 대리운전업체의 이용을 피하라.

9 금액에 상관없다. 단 돈 1000원이라도 팁을 줘라. 물론 예의바르고 성실한 태도의 대리운전기사에 한해서다.

10 고용주의 책임을 지는 마음을 가져라. 대리운전보험에 가입된 기사라 하더라도 인사사고에 대한 보상은 오너가 가입한 책임보험 한도에서 사고처리가 이루어진다. 물론 인사사고로 인한 보험료 인상과 추후 문제도 오너가 감당하게 된다. 결국 고용주 입장에서 대리운전기사를 적절히 관리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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