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미국 스타일 SUV가 등장했다. 쉐보레 트래버스 이야기다. 미국은 대형 SUV와 픽업 천국이다. 땅덩어리와 주차 공간 여유롭고 크고 작은 짐을 직접 싣고 부리고 만들어 쓰는 게 일상인 북미의 라이프스타일이 큰 차 만들기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시킨 셈이다.
쉐보레는 1935년 처음으로 SUV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형 SUV의 고향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 장르의 차를 만들어 왔다. 그 사이 쌓아올린 기술과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다.
트래버스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대형 SUV다. 대형이란 단어만으로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다.
국산 대형 SUV의 대표 모델인 현대 펠리세이드와 비교해보자. 길이는 펠리세이드보다 240mm가 긴 5200mm, 너비는 25mm가 긴 2000mm, 실내 크기의 기준이 되는 휠베이스는 173mm가 큰 3073mm나 된다. 높이도 35mm 큰 1785mm다. 국내 SUV에서 접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크기는 도로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큰 차체의 대형 SUV는 면이 넓고 덩어리가 커서 멋스럽기가 어렵다. 하지만 녀석의 생김새는 제법 괜찮다. 사진보다 실물이 낮다. B 필러를 기준으로 뒷모습은 디스커버리나 레인지로버 감각이 느껴진다. 앞모습은 엠블럼을 기준으로 나뉜 듀얼 포트 프런트 그릴에 날렵한 LED 헤드 램프가 제법 잘 어울려 크지만 미련해 보이지 않는다.
대형 SUV의 장점은 넓고 실용성 좋은 실내다. 국내 소개되는 트래버스는 2열 독립식 캡틴 시트가 올라간 7인승 모델. 1열과 2열은 2인승 독립 시트, 3열은 3인이 앉는 벤치 타입이다. 평평한 실내 바닥 덕에 공간을 쓰기가 더 쉽고 2열 시트 사이로 3열 자리를 드나들기도 괜찮다. 뒤 시트로 갈수록 시트를 살짝 높여 뒷좌석 사람들에게 공간의 시각적 여유도 줬다. 3열 시트는 제법 실용적이지만 어른 셋이 오롯이 앉아 먼 거리를 가기에는 좀 애매하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3열 시트에 사람이 앉고도 해치를 열어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무려 651리터나 된다. 3열 시트를 접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면 1636리터, 2열까지 접으면 2780리터까지 늘어난다. 뒷공간 바닥 아래에 90리터가 넘는 비밀 공간까지 만들어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파워 트레인은 3.6리터 자연흡기 가솔린엔진과 하이드라메틱 9단 자동변속기. 최고출력 314마력과 최대토크 36.8kg.m를 낸다. 엔진은 고르고 부드럽게 반응한다. 자연흡기 엔진 다운 편안한 반응은 화끈한 가속감 대신 꾸준하고 든든하고 차분하게 힘을 낸다. 승차감도 대형 SUV에 어울린다. 살짝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낭창거린다. 하지만 요철이나 지저분한 구간을 지나도 자잘한 충격이 실내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2열은 1열보다 약간 덜, 3열은 2열보다 약간 덜 안락하다. 5링크 서스펜션 구조를 택했지만 커다란 차체와 무게가 갖는 한계를 완벽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쉐보레 특유의 묵직하고 나긋한 승차감은 잘 살렸다.
트래버스는 필요에 따라 전륜과 사륜을 선택해 달릴 수 있다. 기어노브 옆 다이얼을 돌리면 2WD와 4WD 중 선택이 가능한데, 4WD 안에서 통합 오프로드, 견인과 운반에 특화된 토우 홀 모드도 고를 수 있다. 특히 앞바퀴 굴림 시 뒷바퀴로 가는 프로펠러 샤프트의 회전을 완전히 막아 불필요한 동력 손실을 줄여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덕분에 복함 연비는 리터당 8.3km. 덩치와 무게(2090kg)를 감안하면 타당한 수치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편의 장비도 만족감을 키우는 요소들이다. 뒷좌석에 혹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알려주는 뒷좌석 승객 리마인더 기능이나 광각 카메라로 뒤 상황을 보여주는 후방 디스플레이 룸미러, 해치 아래를 발로 툭 차 문을 여닫을 때 쉽고 편하라고 보타이 엠블럼을 프로젝트로 쏴 바닥에 비춰주는 쉐보레 보타이 프로젝션 핸즈프리 파워 리프트게이트 등 실용성과 기능성을 잘 담아냈다.
북미 감성 물씬한 대형 SUV 트래버스는 단일 파워 트레인이지만 겉모습과 실내 패키징을 다양하게 나눠 5가지 트림으로 판매한다. 4520만 원부터 5522만 원으로 가격 폭이 크다. 그중 레드로 디자인 포인트를 준 검정이나 어두운 은색 트래버스가 보기에 가장 매력적이다. 마치 미국 힙합 스타가 타고 다닐 듯 제법 힙한 매력이 물씬하다.
이 녀석의 국내 라이벌은 누가 될까? 펠리세이드나 모하비를 거론하지만 차체 크기와 실내 공간에서 분명 차이가 있으니 애매하고 카니발 같은 MPV와도 성격이 다르니 제외. 혼다 파일럿 정도가 있을까? 그렇게 놓고 보면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 수준이고 넉넉하고 편안한 대형 가족 SUV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괜찮은 모델임에 분명하다.
백문이 부여일 시승. 환경과 취향은 제각각 다르니 놀이 삼아 둘러보고 타보길 권한다. 크고 높은 차를 원한다면 추천할 만하니까.
글 이병진